초단편) 구멍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의 몸은 수많은 구멍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누군가 어떤 구멍에 빠져 갇혀버리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듯. 

 여자를 만나기 전, 민호가 밖에서 울고 들어온 날이면 눈 밖으로 눈물을 짜지 않았더라도 그런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다 집으로 돌아온 날 욕실로 발걸음을 옮길 때 길게 찍히는 물자국에서는 짠내가 났다. 민호가 좋아하는 냄새의 바디워시로 몸을 싹싹 씻은 뒤 방바닥을 닦을 때쯤 이미 눌어버린 눈물 자국들을 오래된 걸레로 벅벅 문질러 닦으면 설움이 다시 방바닥에서 걸레로 걸레에서 민호의 손으로 번졌다. 

 빼꼼히 열린 현관문 곁에 선 여자는 또 울고 들어오겠지? 하고 마치 조롱하듯 히끗 웃으며 말했지만 가만 뜯어보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사랑의 마음이라는 것을 민호는 알고 있었다. 실제로 여자는 민호가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밥을 먹고 웃고 떠들거나 화를 내고 몹시 지쳐서 집으로 돌아오면 민호의 몸 구석구석을 쭉쭉 짜서 ‘바깥’의 물질들을 민호의 몸속에서 모두 빼내고 대신 그 안에 들어차 주었다. 여자가 온 날부터 방바닥에 흥건히 흘려버린 안좋은 기억들을 닦으며 또다시 지쳐버리는 일이 조금씩 줄어든 민호였다. 민호는 여자 덕분에 매일 밤 조금 촉촉할 뿐 몹시 산뜻한 상태로 잠들 수 있었다. 스스로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이 맡기에도 향긋한 냄새를 폴폴 풍기며. 

 문제라면 몸 속 빈 곳 틈틈이 넣어뒀던 여자의 부피가 점점 자란다는 데 있었다. 민호는 자라난 여자 때문에 가끔 가슴께가 쿡쿡 쑤시고 팔다리가 저릿저릿했다. 그래서 한번은 단도직입적으로 여자에게 말했다. 

가끔 가슴이 쑤시고 팔다리가 저려요. 몸 한가운데가 쿵 하고 내려앉듯이 막힐 때도 있어요. 

 나를 너무 많이 차지하지는 말아주세요. 라는 말을 덧붙여서. 그 때 여자는 

하지만 나는 여전히 우리가 두 사람이라는 게 분해요. 

 라고 민호의 품속을 더 깊이 파고들며 말했다. 

 민호의 마음 속에서 여자는 점점 더 자랐다. 그와 동시에 민호를 이루는 수많은 구멍들, 여자가 언젠가 ‘사람의 몸은 우주같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텅 비어있는 민호의 틈들을 빼곡이 채워 나갔다.

 민호의 몸에, 여자로 가득차다 못해 원래 있던 민호의 부분들마저 사라져 너무 오래 쓴 스펀지처럼 커다란 구멍이 숭숭 뚫려버리고 말았을 때였다. 그때 민호는 더 이상 바깥의 어떤 일도 오래 머금지 않게 되었고 그래서 슬픔이나 고통도 민호를 빗겨나갔다. 어느새 민호의 틈으로 불안이나 걱정이 찾아들었더라도 곧 숭숭 뚫린 구멍 사이로 미끄러져나갔기 때문에. 여자의 마음이 식어버린 것은 바로 그런 때였다. 모두의 연애가 그렇듯 몹시 달아올랐던 마음이 식는 것은 그토록 순식간이었다. 

 처음과는 반대로 여자는 조금씩 민호의 틈에서 자신의 부피를 줄여나갔다. 손가락, 발가락, 팔, 다리, 머리카락, ……. 민호가 여자에게 제발 빠져나가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을 때 제 마음은 조금도 변함이 없어요 라고 단호하게 여자는 말했지만, 여자가 자신의 틈을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은 다른 누구보다 민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여전히 몸 속에 여자가 꽉 차 있던 어느날 밤 민호가 홀로 일어나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여자 없이 살 수 있을까. 이렇게 많은 부분들이 여자로 가득 차 있는데. 우려했을 때 머릿속에 그려봤던 자신의 미래와 똑같이 민호는 변해갔다. 

 여자와의 사랑이 모두 끝난 뒤 더 이상 민호에게 여자가 조금도 남아있지 않고, 민호의 집에서 여자의 물건들이 모두 사라졌을 때쯤엔 민호는 그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고 그래서 어떤 고통도 없어 스스로 몹시 평온하다고 생각했다. 설렘이나 기쁨이 없지만 슬픔이나 불안도 없었기 때문에. 온종일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 집으로 돌아온 민호는 더 이상 서둘러 자신이 좋아하는 바디워시로 몸을 씻을 필요도, 화나 슬픔, 고통 같은 것으로 얼룩진 바닥을 닦아낼 필요도 없었다. 그런 마음들은 흡수되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몸속에서 빠져나갔다. 여자가 준 선물이군. 민호는 그렇게 초연하게 여자를 떠올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여자가 찾아와 민호의 틈을 파고들려고 할 때 민호는 이제 더 이상 어떤 사람도 자신의 틈 속으로 들일 수가 없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그래서 아무런 소용없는 사람이 되는 일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